☁️ 혜
자주 읽고 잃어버리는 사람. 새벽 공기, 여름보다 겨울, 왕가위와 장국영, 홍콩과 러시아, 눈보다는 비, 겨울의 아네모네.
최백규 「we all die alone」
Literature 2020.05.16

ㅤ  가난한 애인이 장마를 삼켜서 어지러웠다


ㅤ 숲속에서 망가진 나무를 되감을 때마다

ㅤ 세상엔 일기예보가 너무 많고

ㅤ 내가 만든 날씨는 봄을 웃게 할 수도, 떨어뜨릴 수도 없어서

ㅤ 시들겠다는 비근함을 믿고 싶어졌다


ㅤ 마른 손목과 외로운 눈동자도 썩 어울렸다

ㅤ 거룩한 꽃을 오래 밟다가 잠들면 바람이 다 자살할 때까지 망가져 내리는 유성우


ㅤ 내일 밤 현실에 따뜻한 천사를 보면서

ㅤ 그곳이 천국이라 생각할 텐데

ㅤ 지금은 이대로 사라지면 어쩌지 걱정하는 내가 있고

ㅤ 어제 들은 음악과 며칠 전 봤던 영화에서도

ㅤ 사라지면 안 되는 것들만 사라져서


ㅤ 네가 웃을 때마다 누군가와 손잡고 걷는 꿈들을 꿨다

ㅤ 우리는 슬픈 것이 닮았고, 피가 달라서 더 슬프다

ㅤ 죄를 안고 함께 목 놓아 울어줄 수 없어서 아름다운 적막을 산다

ㅤ 온종일 기도하다가 손목 그림자를 따라 죽어가면


ㅤ 그 여름에서 수평선이 기다리고 있을까


ㅤ 비극은 자주 부풀던 뼈마디보다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