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
자주 읽고 잃어버리는 사람. 새벽 공기, 여름보다 겨울, 왕가위와 장국영, 홍콩과 러시아, 눈보다는 비, 겨울의 아네모네.
김안 「선(善)이 너무나 많지만」
Literature 2020.05.17

ㅤ불행하게 태어난 아이들의

ㅤ어찌할 수 없는 선함처럼 너를 믿었다, 증오한다.

ㅤ기록된 것들은 기억들보다 위대하기에

ㅤ무덤들 뒤에 아무것도 모르는 집이 생기고

ㅤ아무것도 모른 채 집은 불타고

ㅤ나는 단지 너의 말을 내 몸에 받아 적을 뿐이다.

ㅤ어느 미친 새들은 나무가 불타도 울지도, 그 나무를 떠나지도 않는다.

ㅤ그것은 때론 선함이고, 순수함으로 기록된다.

ㅤ하지만 죽어서도

ㅤ서로 다른 자세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이 검은 새들을 자세히 보면, 

ㅤ마치 어린 시절 돋보기로 불태우던 개미 같고

ㅤ어느 미친 작곡가가 목매달기 전에 썼다던 악보 속 음표만 같다.

ㅤ이 나무에 앉아

ㅤ누가 노래할 수 있고 누가 비명을 지를 수 있을까.

ㅤ그런다 한들 누가 밤의 흰 수염을 기르며

ㅤ이 적막의 혀와 섞일 것인가.

ㅤ안녕. 너와 나는 서로에게 선했던가.

ㅤ우린 평등했던가.

ㅤ너와 나는 이 불행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던가.

ㅤ중앙보훈회관 건물에 걸려 있는

ㅤ당선 축하 플래카드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표정의 사람들처럼

ㅤ나의 그림자는 너무 많구나.

ㅤ잠이 들면 나의 귀에서 줄줄이 너의 검은 벌레들이 기어 나와

ㅤ나의 그림자를 불타는 나무 바깥으로 옮기고

ㅤ무덤 속 사람들 머리카락 치렁치렁해지고

ㅤ신문은 부음으로 가득해진다.

ㅤ실성한 여자를 향해 돌을 던지는 아이들의 순수함처럼

ㅤ모두가 선한 싸움을 할 뿐이다.

ㅤ각자의 선함들이 만드는 것은 기껏해야 누군가에게는 악.

ㅤ실은 미치지 않고서야 선할 수 없다.

ㅤ그렇다면

ㅤ너는 얼마나 미쳤기에 나를 밀칠까.

ㅤ미치지 않고서야,

ㅤ나는 여전히 너의 나무에서 말라붙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