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
자주 읽고 잃어버리는 사람. 새벽 공기, 여름보다 겨울, 왕가위와 장국영, 홍콩과 러시아, 눈보다는 비, 겨울의 아네모네.
유형진 「<허니밀크랜드>의 체크무늬 코끼리」
Literature 2020.06.02

ㅤ그녀는 사랑이 깨지는 순간을 본다

ㅤ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순간을

ㅤ그녀는 자주 목도目睹한다


ㅤ사랑이 어떻게 깨지는지

ㅤ깨진 사랑이 어떻게 가루가 되는지

ㅤ가루가 된 사랑이 어떻게 녹는지

ㅤ녹은 사랑이 어떻게 질척해지는지

ㅤ그 질척한 사랑이 그리는 마블링을

ㅤ목도한다


ㅤ녹아도 녹지 않고

ㅤ깨져도 깨지지 않는

ㅤ어떤 알갱이들이 만들어주는

ㅤ그 오묘한 무늬를

ㅤ체크무늬 코끼리

ㅤ그녀는 본다


ㅤ사랑의 마블링을 볼 줄 아는 그녀는

ㅤ그래서 슬프고 아름다운데

ㅤ정작 그녀를 아무도 볼 수 없다는 것이

ㅤ이 세계의 비극


ㅤ하지만 이 세계의 비극은 이것 말고도

ㅤ몇 개는 더 있는데

ㅤ더 큰 비극은 그 비극을 이야기하기에 시간은

ㅤ산장에 사는 검은 고양이의 털만큼

ㅤ셀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