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빈 「미니멀리스트」
Literature
2020.06.02
나는 말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 하고
해야만 하는 걸 하는 것의 느낌을 좋아한다
— 거트루드 스타인
ㅤ찢어진 이불을 덮고 잤다
ㅤ오랫동안
ㅤ찢어진 마음에 골몰하였다
ㅤ깨어날 수 있다면
ㅤ불길한 꿈은 복된 꿈으로
ㅤ빛 속으로 풀쩍
ㅤ뛰어든 고라니가 무사하므로
ㅤ오래된 건물이 무너짐을 마쳤으므로
ㅤ돌아가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므로
ㅤ기지개를 켜듯 이불의 세계는
ㅤ영원히 넓어지기
ㅤ모름지기 비밀이란 말하지 않음으로
ㅤ책임을 다 한 것으로
ㅤ어디든 누가 살다 간 자리
ㅤ어디든 누가 죽어간 자리
ㅤ오랫동안 비어 있던 서랍은
ㅤ신념을 가지게 된다
ㅤ“가끔 우리가 살아 있는 게 기적 같아”
ㅤ이 세계에는 매일매일 근사한 일이
ㅤ무화과 스콘 굽는 냄새가
ㅤ누군가
ㅤ3초에 한 번씩 끔찍하게
ㅤ복선을 거두어 가지 않으면서
ㅤ한 줌의 사랑을 꿰매어주면서
ㅤ“혹시 사람을 좋아하세요?”
ㅤ더는 버틸 수 없는 질문에 대해
ㅤ대답하지 않기로
ㅤ내가 나인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될 때
ㅤ긴 잠에 빠진 나를 흔들어 깨울 때
ㅤ아래층에서 굉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