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
자주 읽고 잃어버리는 사람. 새벽 공기, 여름보다 겨울, 왕가위와 장국영, 홍콩과 러시아, 눈보다는 비, 겨울의 아네모네.
백은선 「프랙탈」
Literature 2020.06.24

ㅤ그곳은 천국이야?

ㅤ난 단지 내가 운이 참 많구나

ㅤ그리고 운이 없구나 하고 생각해


ㅤ강을 따라 걷는

ㅤ네 등을 보는 내가 있어

ㅤ내가 있는 곳에서 네가 생겨나고


ㅤ이 많은 얼굴을 좀 봐

ㅤ모두가 한때는 배 속에 열 달씩 있던

ㅤ사람들을 좀 봐


ㅤ그런 것이 너무 끔찍하다고 하면

ㅤ그런 내가 엄마라고 하면

ㅤ내가 꾸는 꿈이 너무 어둡다고

ㅤ네가 이야기하면


ㅤ근사한 말로는 할 수 없는 얘기가 있어서

ㅤ단지 환상이나 언덕에 대해서만

ㅤ새의 하얀 날개나

ㅤ사라진 연기를 포착하는 것에 대해서만

ㅤ생각할 수는 없어서


ㅤ춤을 추는 영원한 비열을 이야기해줘

ㅤ천국의 장르를 폭로해줘

ㅤ얼굴이 얼굴을 데려가는 수법을

ㅤ사람이 사람을 만드는 신비를


ㅤ종 속에는 종이 감춘 동그란 것이 있다

ㅤ천사가 날개를 버리는 비극이 있다


ㅤ나는 창밖을 보면 슬퍼 모든 창이 그래

ㅤ이해할수록 오해도 커지는 문법이야


ㅤ매일매일 잠든 얼굴을 봐

ㅤ단순하게 단순하게 저 얼굴을 끝까지 가져가야지 하고

ㅤ나는 내 운을 시험한다


ㅤ대비되는 말들이 아니라 한통속인 말들

ㅤ순간과 영원 빛과 어둠 그런 거 있잖아

ㅤ어깨를 마구 흔들어 깨워 밤새도록 네게 늘어놓고 싶어


ㅤ병에 걸린 사람들 엎드린 채

ㅤ울긋불긋해질 때

ㅤ등을 보이는 사람은 등만으로 기억되고


ㅤ저 많은 손가락들 좀 봐

ㅤ이런 끔찍한 신비가

ㅤ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