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
자주 읽고 잃어버리는 사람. 새벽 공기, 여름보다 겨울, 왕가위와 장국영, 홍콩과 러시아, 눈보다는 비, 겨울의 아네모네.
이소호 「루즈벨트 아일랜드」
Literature 2020.09.15

ㅤ빛 속에서 그늘을 들쳐 업고 너와

ㅤ섬에서


ㅤ물담배 피우고 싶다. 글라스로 와인 한 잔을 시키고 시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럼 넌 내 눈을 보고 그림 이야기를 하겠지. 여러 개의 시선이 뒤섞인 세잔에 대해서. 세잔을 말할 때 반짝이던 네 눈에 대해서, 쓰겠지. 좁은 캔버스에 갇힌 검은 침대와 컵과 흰 장미를. 한 쌍의 브래지어를 우리에게 채우는 나라에 대해서. 그럼 우린 왜 이 순간이 위대한지 말하겠지. 우린 섬에서 또 다른 섬에 가 눕겠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네 방에 앉아서 맨해튼을 바라보겠지. 내일은 그랜드 센트럴에 가서 우리 주니어스 치즈 케이크를 먹자. 먹으면서 왕가위 영화를 보자. 이랑의 노래를 듣자. 들키지 말자. 그리고 우리 참 지질하다고 웃겠지. 목에 커튼을 걸고 거울 앞에 서서 우린 잘 어울린다고 말하겠지. 이렇게 사랑하는데 어째서 사랑이 아니야?


ㅤ웃겠지


ㅤ내가 돌아가는 그날은 눈이 아주 많이 왔다고 네가 그랬다. 뉴욕에 있는 사람들 그 누구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그랬다 네가.